서로 신뢰하라
열왕기하 22:7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성전을 수리하게 하라. 그러나 그들의 손에 맡긴 은을 회계하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진실하게 행함이니라.”
프랜시스 교수는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1992)』이란 널리 알려진 책을 폈습니다. 그가 두 번째로 쓴 책이 『트러스트(Trust)』란 책입니다. 이 책의 핵심 되는 주장은 신뢰(Trust)도가 높은 사회가 경쟁력이 높다는 주장입니다. 다른 조건을 다 갖추었어도 사회 전체에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정체되고 빈곤과 혼란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신뢰도가 높은 사회는 비록 외적 조건은 나쁠지라도 그런 조건들을 힘 모아 극복해 나가면서 빠른 성장과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신뢰도가 떨어진 우리 사회에서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라 여겨집니다.
요시야 왕은 성전을 보수하면서 은을 거두어서 직접 일꾼들에게 주었으며 그 돈에 대해서 회계하지 말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데리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 신뢰를 받은 사람들 역시 왕을 신뢰하게 되었고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좋은 결과를 이루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연쇄살인사건의 억울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20여년의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는 자신을 믿어준 단 한 사람의 교도관이 있어서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힘든 일을 겪거나 혹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설혹 내가 잘못했을 때라도 나를 믿어주고 신뢰하는 사람을 통하여 우리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고 곁을 떠나지 않았던 마리아로 인해 사역에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가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부터 동행하기 시작하여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순교할 때까지 변함없이 동행한 것으로 보아 참으로 신의로운 분이었습니다. 이런 신의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는 지속되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 바로 이것이 인자와 진리입니다. 인자와 진리가 회복될 때, 그 공동체는 프랜시스 교수의 말대로 성장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상부상조하며 살았던 이 민족이 불신과 배신으로 얼룩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심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교회까지도 신천지와 같은 집단을 통해 서로 의심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불신하는 사회가 도달하는 길은 자명합니다. 정체와 혼란일 뿐입니다. 철저한 의심과 검증은 학문의 세계에서나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인간에 대한 의심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킵니다. 이 불신과 의심을 끝내는 길은 신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처럼 믿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과거를 뒤로 하고 서로 믿어주며 살 때,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신뢰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장발장은 신뢰를 받는 그 순간 그 인격과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패트라취의 말입니다. 의심의 끝은 안식의 시작이다. 믿어보십시오. 안식과 평화와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올해 신축년의 의미를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신을 믿을 신자로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축복이 옵니다. 그래서 신축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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