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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7.(목),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아가 8:6)
운영자 2020-12-17 추천 0 댓글 0 조회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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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가 8:6)

 

6장부터는 신랑의 부름을 외면한 술람미 여인의 행동에 의해 초래된 위기를 극복하고 이전보다 더 성숙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6장의 표현 중 압권은 바로 3절입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에리히 프롬도 지적한 바가 있듯이, 흔히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할 때, 나는 그의 것이 되고 그는 나의 것이 됩니다. 사랑은 소유격입니다. 정말로 사랑할 때 나는 사라지고 그가 내 안에 들어옵니다. 이것이 합일이며 자발적 구속입니다. 어거스틴은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나는 당신의 노예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나는 당신의 것이라는 이 고백에는 사랑에 의한 자기의 비움과 동시에 정절이 내포되어 있기도 합니다.

 

710절에도 역시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진정 사랑하면 서로에게 소유가 됩니다. 이 때의 소유는 자발적 소유로서 비인격적인 소유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한 쪽으로부터의 일방적인 소유와는 그 격이 다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것이 된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봅시다. 내가 가장 사랑하기에 이미 그녀는 내 마음을 소유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 사랑하는 사람이 나만을 위한 존재가 됩니다. 이것을 상호소유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러한 사랑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은 3:24절입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아마 86절처럼 멋진 시구도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소유와 질투는 사랑과 더불어 삼위일체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소유 없는 사랑이 사랑일까? 질투 없는 사랑이 사랑일까? 하나님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표현하셨지요. 술람미는 자신을 언제나 도장처럼 품기를 소망합니다. 그 어떤 다른 연인도 그 곁에 두지 않았으면 하는 강력한 마음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렬하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폭풍의 언덕에서 히드클립이 죽은 자신의 연인의 시체에 키스하는 대목이 떠오르기도 하고, 죽은 줄 알고 연인과 같이 죽음을 택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과연 인류 역사에 죽음의 힘을 능가하는 것은 사랑과 질투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다.’는 말에서 스올은 무덤을 뜻하며 죽음을 의미하는 다른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죽음이 아닐까 합니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불안의 근원에는 죽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삼키며 모두를 두렵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을 이기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으로 죽음을 택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엄마는 자식을 위한 사랑으로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죽음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아가서와 세상의 사랑에서도 사랑은 죽음과 맞서는 힘을 갖고 있으나 예수님의 사랑은 죽음을 능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죽음은 소멸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죽음아 네 쏘는 침이 어디 있느냐.”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죽음 앞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가장 위대합니다. 모든 것을 능가합니다. 코로나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는 것도 바로 사랑입니다. 요한사도의 말씀대로 이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예수 안에, 그리고 서로의 안에 거할 때, 모든 어둠과 죽음의 세력은 극복될 것입니다. 두려울 때 사랑하십시오. 외로울 때 사랑하십시오. 우울할 때 사랑하십시오. 분노가 우리를 사를 때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사랑만이 해법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기게 됩니다. 아멘

 

주님, 오늘도 주의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사랑받고 있는 존재이며 주님께 속한 자임을 깨닫고 담대하게 하소서. 서로 사랑하며 사랑의 힘으로 불안과 불화와 이 코로나와 분쟁을 극복하게 하옵소서. 사랑의 힘으로 치유 받게 하옵소서. 우리 남문의 식구들 가운데 특히 병으로 고통당하시는 분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치유를 소망하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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